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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오늘의 커피

보나 파크 2019. 5. 23. 07:33

상암에서 오전 7시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역시 스타벅스다. 

(밖에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커피 사러 나가면서 투썸이 문을 연 것을 봤기 때문에...)

커피템플, 박이추, 모임 등 시그니쳐 메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가게들은 많지만,

스타벅스만큼의 상업적인 부지런함은 갖추지 못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균일한 시간에 비슷한 품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세상의 원리를 바꿔버릴만큼 강력하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내가 두시반에 집에 들어가서

여섯시 반 전에 회사에 도착해 편집을 시작하는 스케쥴을 해냈다는 것이다.

(짝짝짝) 구태여 일찍 와놓고 또 시간이 남을 것 같으니

커피도 사오고 편집말고 딴짓을 하고는 있지만. 

 

요새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타인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노력해도 내 멋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는 거다.

얼추 비슷하게 이끌어 갈 수는 있겠지만, 

때론 의도했던 정반대로 엇나가버릴 수 있고

몇 년 간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도 닮지 않았던 걸수도 있다.

 

거기에 하나하나 실망하며 한 명씩 배척해버릴 것인가.

그러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결국엔 사람 가득한 곳에서 혼자 무인도에 갇히는 꼴이 된다.

그러고 나면 결국은 마음까지 다시 불편해질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친절이나 행운을 기대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대한 균일한 품질의 나를 제공하는 것.

때론 마음에 비가 와서 눅눅해진 맛일 수도 있고 

오래 묵은 감정으로 기름이 살짝 낀 시큼한 맛일 때도 있겠지만

다시 새로 원두를 고르고 신경써서 볶아서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거다.

그러면 이따금 찾아오는 무례한 손님들이 불평하든 말든

나는 괜찮은 상태 그대로라는 자부심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나를 찾는 이들은 알 거다.

이것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나의 한 면이라는 걸. 

 

힘든 시기에 지혜를 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왠지 또 명언을 시전할 것 같아서

참아야겠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다.

 

편집실에서 다섯 번째 알람이 울렸다.

가히 성공적인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