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twenties
글은 역시 상황이 일단락되고 돌이켜보며 쓰는 게 최선이다.
감정이 남아있을 때의 글은 거의 버석버석 삐져나오는 감정을 담아내는 쓰레기통에 불과하니까.
화도 났다가 갑자기 미안해졌다가 돌이켜보니 슬프기도 했던 며칠이 지나고
문득 나의 이십대가 떠올랐다.
몇 번의 진한 사랑을 경험하는 사이사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마음의 생채기 같은 게
분명히 20대의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스무살에 고등학교 내내 좋아하던 선배의 연락을 받고
설레는 기분으로 나간 술자리에서
나는 기억이 끊긴 채 돌아왔고, 그래서 다신 그를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솔직히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은 없었고, 지금으로선 있었다해도 인생을 뒤흔들만큼의 뭣도 아니겠지만
군데군데 기억나는 선배의 숨결같은 것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고
계속해서 군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다가 겨우 결심을 하고 말했다.
다신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그래도 그때의 나는 꽤 당당했던 것 같다.
첫 멘트가 “내가 선배 3년 간 좋아했던 거 알아요?”였으니까.
그때로부터 쭉 무언갈 빼앗긴 것 같은 감정 같은 걸 잊고 지내다,
또다시 생채기를 얻은 건 스물 네살 무렵.
한번의 사랑이 지나가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싶어질 때쯤,
이상형이라 믿었던 어느 엇비슷한 또래로부터
세상에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여린 마음에 차마 직접 복수는 할 수 없었던 터라,
내 젊음과 에너지를 이용해 다른 남자들을 가볍게 만나는 것으로
어리석은 복수를 대신했다.
이를테면, 일이주에 한번씩 남자친구가 바뀌는 정도랄까.
물론 방황의 시기는 아주 잠깐이었고 다행이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솔직히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가볍게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다는 진실을 또 배웠다.
그리고 나서 이제 누구도 만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찰나,
정말로 나에 대해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나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되었고
그리고 먼 미래를 꿈꾸기도 할 정도로 나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제멋대로인 내가 그를 다시 만나려고 여행지까지 바꿔버릴 정도로
(혹시 제멋대로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기도.) 열심이었고,
그래서 그때 그 겨울의 기억들은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심장이 사각사각 갈리는 듯한 아픔을 겪은 봄까지도.
그런 사랑의 기억을 안고 또 몇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또 결국 완전히 헤어지게 되고.
그 친구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게되고
또다시 어리석게 화가 났다가,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정말 진심으로
그 애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단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또다시 순간의 감정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던 것이다.
젊은 날의 생채기는 교훈을 남기기도 하고
또 젊으니까 극복이 빠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상처를 주는 쪽이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그 상태로 함께 아침을 맞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인생에서 적어도 한번은, 살아있다면 모두가 느껴봤으면 한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반대를 보여줬다.
실은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실은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꽤 상처 받았다. 누구때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실망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과장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차마 할말을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던 눈빛이
나의 스물 한 살을 떠올리게 했고, 결국 사과를 제대로 했었어야 하지만
나또한 차마 제대로 용기내지 못했다. 그리고 원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상처들이 점점 나를 냉소적으로 만들어서 일까.
아니면 방송을 만들며 자꾸 사람을 평가하는 습관이 들어서일까.
사회생활을 하며 묻혀온 감정의 때가, 진짜 감정들을 감춰버려서일까.
점점 나또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올 때, 무슨 꿍꿍이일까
저이는 나에게 어떤 효용가치가 있나를 따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올 여름, 나는 잠깐 그 자리에 멈췄다.
모든 걸 되돌릴 순 없지만,
한여름밤의 꿈처럼 간직될 수 있던 기억을
잊고 싶은 기억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 다신 볼 일이 없으니까 괜찮은 게 아니라,
다신 못볼수도 있으니 더 전하고 싶었다.
그게 나의 이십대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말이니까.
그리고 이 이야기는 첫 고해성사에서만이 제대로 털어놓게 되겠지.
오늘 밤은, 너를 위해 기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