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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애청자 그녀

예능은 커녕 드라마도 정극은 잘 보지도 않고 호러나 좀비물,

요새 국내에서 잘 하지도 않는 시트콤 같은 걸 좋아하면서

영화도 아니고 하필 TV냐.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도 갖고 싶고 재밌(어보이)는 일은 하고 싶고

이것저것 재다보니 결국 애매하게 이르른 곳이 방송국이 아니냐.

그런 고민에 빠졌었다.

싱크, 시퀀싱, 프리뷰...  많은 장면들을 담은 로우데이터에 압도당하면서

편집이 생각보다 힘들고 재밌지도 않다고 푸념도 했다.

(솔직히 아직 진짜 그 과정에서의 재미는 거의 모르겠기도 하다.)

 

일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공식 계정을 관리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인데

(왜냐면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고 무엇보다도 방송보다 제작 과정이 훠얼씬 심플하니까,

수많은 컨펌을 거치지 않고도 내 의견이 바로바로 반영되어 결과물로 나올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

게시글의 댓글을 훑어보다 한 팬의 계정을 열독(?)하게 되었다.

 

한 여자인데, 최근까지 삼*이란 초대기업 계열사에 10년 간 근무했고

최근에는 결혼을 하면서 이직(아니면 퇴직)까지 한 사람이다. 

그녀는 우리 프로를 보면 자신의 신입시절이 겹쳐보인다고 했다.

잘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눈물만 흘렸고

동기들에 비해 뒤쳐질까 스스로를 채찍질했으며,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던 시절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도 했단다. 

에필로그를 보면 그때 그시절의 감정이 쑥 올라와 지금도 눈물이 난단다.

(나도 그렇다. 에필로그 짱!!!)

그녀의 어린 시절이 나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정말로 잘 하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신입시절 이야기일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남은 6주라도 정말 치열하게 일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막내에게 주어지는 분량은 고작 1~2분이지만,

운좋게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번이지만 꽤 많은 본편을 편집할 기회도 얻었고

때때로 선배에게 가편해서 넘긴 것들이 후가공없이 꽤 그대로

전파에 실려나간 적도 있었다. 지금 받은 분량도 꽤 의미심장한 것들이다. 

더군다나 내가 내 편집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적당히 잘 이어붙인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 나 하나 팀에서 있고 없고가 프로그램에 1도

(0.01정도는 되려나...?)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그래도 플러스가 될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좀 잘해야 겠다. 

힘든 거 어느 정도 적응됐고, 불평도 할만큼 다 했고 갈등도 꽤 적당히 겪다가 끝났다.

이제는 진짜 한번 제대로 몰입을 할 때다. 갑자기 저 글을 보는데 그러고 싶어졌다.

그리고 끝났을 때 후련하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 왜 하필 TV냐면,

나도 사실 이런 걸 하고 싶었다.

담론이나 문제의식 같이 거창한 거 말고,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

나 신입 땐 어땠고, 첫사랑은 어땠고, 가볍게 보다보면 

친구끼리 만나 으레 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콘텐츠말이다.

우리 프로, 조금 거창한 것 같았는데

무수히 쏟아지는 어려운 법률용어 사이에서도 실은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장 평범한 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성에 못미쳐서 울고 

나보다 잘하는 놈 질투도 하다가 또 한번 제대로

자기 자신에게 승부수를 던져서 성장도 하는.  

 

근데 일단 오늘은 퇴근을 해야겠다...

승부수는 내일부터...

6주에서 하루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