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말 오랜만에, 일하면서 재밌단 감각을 느꼈다.
(일 한지 오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일은 늘 거의 하고 있었기에..)
거의 1년 반 만인가.
말 그대로 재밌었다.
어릴 적 기억이 군데군데 묻은 동네에서
아주 어렵지 않은 촬영을 했다.
내 역할은 거의 라이브 방송을 무대 위 LED에 송출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오랫동안 합을 맞췄던 사람도, 그자리에서 처음 본 사람도 있었지만
함께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루 종일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아드레날린을 줬던 것이다. 생리통이 잊힐 만큼.
저녁도 먹지 못하고 새벽까지 강행했지만,
‘강행’이라기엔 어쩐지 여유도 있고 다들(?) 기분 좋게 잘 마무리했다.
그야말로 예능 씬에 보기 드문 훈훈한 촬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재밌어서 다행이었고, 또 이 일을 시작하기 잘했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참 간만에 느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플 때 쉬지 못해서 사실 지금까지도 컨디션이 그닥 좋지는 않다.
그래, 아픔을 잊을 정도로 재밌었다고 거짓말하진 않겠다.
솔직히 중간중간에 조금 현기증이 났고, 하복부의 통증이 이따금씩 쥐어짜듯 느껴졌지만
촬영이 끝날 때까지 쉬거나 빠져있지 않고 내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웃는 낯으로 즐겁게.
군중과 유리된 감각 따위를 느끼지도 않았다.
재미를 느꼈던 건, 사실 무리와 완벽하게 동화되어 한 씬이 끝날 때마다 함께 기뻐하고
몰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일터에서의 재미는 거의 몰입과 동일시된다.
다만 이걸 기한 안에 끝마쳐야 된다는 사명감과는 거리가 있는, 순수한 의미의 재미가 있었다. 이번 촬영에는.
그래서 딜레이가 되도 대관료 걱정은 조금 됐지만,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하진 않았다.
뭐, 아무렴 어떤가. 쪼는 사람도 없고 (보통은 있었으니까…) 다만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데.
그리고 다음 날.
생리통이 이렇게 3일을 간 적이 없다. 보통 첫날이나 둘째 날 한두시간만 진통제를 한두 알 먹고
뜨듯한 장판에 지지면서 쉬면 씻은 듯이는 아니더라도 그닥 불편함 없이 사라지는 정도였는데.
물론 생리통이 극심한 날, 쉬지 못하고 무리하면 하루 정도는 더 통증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아랫배 근육이 과긴장한 듯한 감각과 함께 하루종일 통증이 있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올해 건강검진으로 만나게 된 머리가 하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아프지 않으면 괜찮지만, 아프면 떼어내야 돼요.”
떼어낸다는 말은 곧 수술을 의미했다.
수술이라니. 손가락을 살짝 꿰맨 것 말고는 내 인생에 아직까지 이렇다할 큰 수술은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고 이 간헐적 고통과 묵직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참에 한달 정도 푹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생각이 들자
일도 일이지만 솔직히 지금 조금 쉬고 싶기도 한 것 같다고 솔직한 마음을 인정해보기로 했다.
정말 만약에 수술을 하게 된다면…
글쎄. 그 여부는 빨라도 다다음주 쯤 알 수 있을 거다.
한달을 쉰다면, 나는 뭘 하면 좋을까.
지금 같아서는 소설을 완성하거나, 기타를 계속 배울 수도 있겠지.
운동은 매일매일 꾸준히 할 거다. 영어학원도 계속 다닐 수 있겠지.
그렇게 겨울이 오기 전까지, 계획했던 일들을 조금씩 더 할 수 있을 거다.
그러고 나면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일에 매진할 수 있을까?
상상회로를 돌리다보니, 어느덧 9월의 첫주가 끝나가고 있었고
가을 밤은 여름 밤 못지 않게 적절히 선선하고,
나는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이 밤을 천천히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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