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깊고 심오한 것,
벅차올라 한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강한 감정이라 생각해왔다.
누군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영혼의 울림을 느낀다고도 하고,
실제로 귓가에 종이 울렸다고도 하고.
그런 감각들이 허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그렇다고 느낀 적이 한두번은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강렬했던 사랑들은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갔고
(내가 떠나보낸 건지, 알아서 떠나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더러는 오래도록, 또 지금껏 서로를 기억하곤 했지만
요새 문득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은 강렬한 것과는 꽤 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늦은 시간 퇴근하고 돌아와
굳이 도어락을 누르지 않고 벨을 눌렀을 때
몇초 뒤에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곤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든지.
일찍 혹은 늦게 일터를 나간 사람을 위해
간단히 차려놓은 아침이나
혹은 간단히 해놓은 집안일이라든지.
의도친 않았더라도
늦게 출근하는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발 아래 어딘가에서 솔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마치 숲속 어딘가에서 잠을 깨는 것 같은 상쾌함으로
잠에서 깨었는데, 창문은 단단히 닫혀있고
사실 그 사람이 내 발밑에 선풍기를 자연풍으로 해놓고
솔솔 틀어놓고 나간 오늘 아침같은 감각.
그런 조각들이 나는 퍽 요즘
사랑스럽고 또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거다.
극적이고 아련하게 가슴 아픈 것만이 아닌,
편안하고 따스하고 기분 좋은 그런 느낌.
그래서 계속 그 안에서 놀고만 싶은
한없이 게을러지는 부작용도 있지만
그래도 한동안 긴장과 불안만 있었던 나의 감각체계로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자주 느낄 수 없던 햇살과 같은 것들이
점점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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